역대하 20장


1. 여호사밧이 온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만 섬기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외적이 쳐들어오는 수가 있는가?

    있다: 일시적으로 두려울 수밖에 없는 일(3)이긴 하지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국은 커다란 복으로 화하고 말았다. 설령 그것이 아합과 가깝게 지낸 일에 대한 벌이라고 하더라도(19:2) 회개하고 돌아섰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혁을 이뤄낸 여호사밧에게는 또 다른 복의 서막일 뿐이다.

2.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세일산 주민들=에돔)이라면(2) 요단 동편 전체가 연합하여 쳐들어온 셈이다. 그런데 ‘바다 저쪽 아람’이란 무슨 말인가?

    내용상으로는 ‘아람’이 아니라 ‘에돔’이어야 옳다. 그래서 아예 에돔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유다의 입장에서 바다 저편은 사해의 남동쪽을 가리킨다. 반면에 아람은 강 건너 북쪽이다.

3. 엔게디는 종려나무와 포도원의 고벨화로 유명하다(아 1:14). 하사손다말의 다말은 종려나무를 뜻한다. 사해의 서쪽 연안 중앙부에 있다. 공격 목표가 예루살렘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사해의 동부에 있던 연합군이 어디로 쳐들어왔다는 말인가?

    사해의 남쪽에서 올라온 셈이며 그렇다면 에돔이 주력부대이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은 엔게디보다는 훨씬 북쪽 산지에 있기 때문이다.

4. 외적의 침입에 맞서 전국적으로 금식을 선포한 예가 있는가?

    사무엘이나(삼상 7:6), 사울이: 왕으로서 전국적인 금식을 선포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5. 새 뜰이라면 새로 지었다는 말인가?

    아마도 여호사밧이 확장을 했거나 개축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6. 어떤 점에서 여호사밧의 기도는 좋은 기도인가?

    하나님의 능력(6, 이방 나라도 다스림)과 행하심(7, 원주민을 쫓아내고 땅을 주셨음)과 약속(8-9, 성전에서 기도할 때 듣겠다, 6:28-30)에 근거한 기도라는 점에서: 하나님을 잘 알고 그 뜻에 부합하는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인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이런 기도를 가능케 한다.

7. 여호사밧의 기도(10-13)의 핵심을 다음과 요약할 때 (       )에 알맞은 단어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주신 이 땅을 치러오는 (        )한 놈들이 있나이다. 성전에서 기도하면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나이다. 우리는 힘이 없나이다.”

    배은망덕(10-11):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자기들을 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8. 대하 17:13-19절에 보면 여호사밧의 군대가 116만이 넘었는데 쳐들어오는 적을 어떻게 할 능력이 없다고(12)? 왜 이렇게 허약한 소리를 하는가? 아합과 연합해서 싸우러 갔다가 타격을 많이 받았나?

    인간적인 능력을 제쳐 두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말인 것 같다. 능력 있는 사람이 더 좋은 믿음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은데 어떻게 이런 일이? 그의 아버지 아사가 그랬으니(14:11) 배웠을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어서 가만히 있어야 했던 모세의 경우(출 14:14)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9. 그리스도인에게는 포기나 절망이 있을 수 없다.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주님께 맡기고 기다려야: 오직 주만 바라보는 여호사밧에게(12) 하나님께서 그냥 구경만 하라(17)고 대답을 하셨다. 홍해 가에서 주셨던 말씀(출 14:14)이나 마찬가지다.

10. 여호사밧이 드린 이 기도가 출전을 앞둔 기도라기보다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해야 할 만한 이유는 무엇인가?

    유다 모든 사람들이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하나님께 나아왔기 때문이다(13).

11. 대제사장도 있고(19:8) 선지자도 있었는데(19:2) 왜 직분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계시가 레위인에게 임하셨을까?

    하나님 마음: 하나님은 특정한 제도에 매이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보여주는 걸까? 대제사장이나 선지지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인데? 잘 모르겠다.

12. 회중 가운데 한 사람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셨다. 누군가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오늘날에는 이런 현상이 없다: 선지자를 보내던 시절이 있었고 직접적인 계시를 주던 시절이 있었다. 마지막 선지자가 오신 이후에 온전한 말씀을 주셨으니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으면 말씀을 보아야 한다. 이런 계시가 임하였다고 믿은 탓에 실수를 저지른 이단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13. 이 전쟁만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닐텐데?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을 한 사람이 누구더라?

    다윗(삼상 17:47), 요나단: 믿음은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합리성(승패는 작전이나 군사력에 달린 것)을 뛰어넘는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이다. 그러나 여기서 야하시엘이 말하는 것은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특별힌 간섭하신다는 뜻이다. 같은 표현이지만 의미는 다르다. 모든 전쟁을 이런 식으로 치를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14. 하나님께 속한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할 일이 별로 없다. 할 일이 무엇인가?

    구경뿐이다(17, 출 14:14): 대열을 이루고 서서 보라고 했다. 맞서 나가라고 하셨지만 서서 보는 것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

15. 왕이 얼굴을 땅에 대고 경배를 드렸다. 누구의 말을 듣고 그랬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음성이야 레위인의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다는 증거다.

16. 찬양의 위력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을 만큼 크다? 맞는 말인가?

    승패는 찬양대를 세우기로 결정하기 전에 이미 정해진 것이다. 반드시 찬양 때문에 승리한 것이 아니다. 그 전에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앞에 엎드린 탓이다. 그 찬양 소리에 맞추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이다. 단순하게 찬양에만 집중하면 안 된다.

17. 군대 앞에 찬양대를 세운 것은 누구인가?

    여호사밧과 백성들: 왕이 백성들과 의논해서 세운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말에 왕과 백성들이 그렇게 결심을 했을 뿐이다.

18. 여호와께서 웬 복병을 두셨지(22)? 유다에서 선발한 복병인가?

    아마 세일산 주민들을 복병으로 오인했을 것: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이 세일산 주민들을 멸한 것으로 보아 그렇다. 도적떼들의 자중지란이다. 악한 목적을 품고 악한 방식으로 연합한 자들은 악한 방식으로 깨어지더라. 합세해서 적을 친 다음 자기들끼리 또 싸우고!

19. 탈취한 물건들(25)이 이상하다. 전쟁하러 온 사람들이 무슨 재물과 의복과 보물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었을까?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아예 이길 것을 확신하고 거주할 목적으로 모든 재산을 끌고 온 모양이다.

20. 싸우지도 않고 엄청난 승리를 얻은 후에 그 골짜기를 브라가 골짜기라고 불렀단다. 무슨 뜻일지 짐작해보자.

    축복의 골짜기: 축복을 히브리말로 베라카라고 한다. 미국 대통령 버락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번개를 가리키는 바라크(사사기의 바락)라는 설명도 있음). 비슷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사왕이 취한 태도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16장). 승리라고 다 같은 승리가 아니다. 여호사밧의 승리는 진정한 평안을 가져다 주었지만 외세를 등에 없은 아사의 승리는 불안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

21. 말도 안 되는 승리를 거두었다. 더구나 이방인들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쳤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것도 이상하다. 정상적이라면 무슨 소문이 나야 할까?

    암몬과 모압이 바보같이 저희들끼리 싸우다가 망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 특히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나 하는 말이지 이방인이 이렇게 생각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상하다. 그리하여 태평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은혜다. 평강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혜다.

22. 여호와 보시기에 일평생 정직하게 행한 여호사밧이 왜 산당을 철거하지 않았을까? 17:6절을 참고해서 생각해보자.

    여호사밧이 철거하려고 했으니 백성들이 완강하게 버틴 모양이다. ‘마음을 정하여’란 표현이 그걸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23. 에시온 게벨은 유다에서도 아주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아카바만이 있는 곳이다. 에돔 지역의 남쪽인데 어떻게 거기서 배를 만들 수 있었을까?

    지난 번 전투 후에 에돔이 유다의 속국으로 있었던 모양이다: 그 시절에 에돔에 섭정왕이 있었다는 것(왕상 22:47) 그런 의미다.

24.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이 행한 일에 큰 복을 주셨지만 악한 왕 아하시야와 손을 잡고 배를 만들어 해상무역을 하려는 계획에는 복을 주시지 않았나?

    복을 주셨다: 잘못된 길을 갈 때에는 속히 징계가 임하는 것이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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