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9장


1. 여호사밧의 잘못이 무엇인가?

    아합과 교제한 것(혼인 ↔ 고후 6:14),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은 것: 여호사밧으로서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민족의 통일이라는 거창한 명분이 있었을 테지만 결과를 보면 이 두 가지가 문제인 셈이다. 하나님을 저버린 북 왕국과의 통일은 바람직하지 않은 셈이다.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전장에 나갔다가 위험한 일을 겪었던 것처럼 아합의 집안과 혼인한 것은 훗날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다.

2. 여호사밧이 무사히 돌아온 걸까, 평안히 돌아온 걸까?

    평안히: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돌아왔다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미가야가 예언할 때 아합 왕은 죽을지라도 나머지 백성들은 평안히 돌아갈 것이라고 한 말씀(18:16)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3.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면 안 되나?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 말씀(마 5:44)의 원수는 나의 원수를 말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원수(삿 5:31)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도 자신의 대적자를 사랑하시지는 않았다. 자기 백성을 사랑하셨다.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마음의 문제이지 행동에 동참하라는 뜻이 아니다.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돌아서게 하는 노력은 가능한 것이지만 그의 행위에 동참하는 것은 옳지 않다. (참고, 마 12:30, 눅 9:50, 눅 11:23, 고후 6:14)

4. 선지자가 이렇게 책망하는데 여호사밧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휴! 다행이다. 왜?

    그의 아버지가 한 행위(16:10)를 따라하지 않아서: 선지자 예후의 아버지인 하나니가 여호사밧의 아버지인 아사왕에게 책망을 했다가 옥에 갇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5. 이스라엘의 전국을 가리킬 때 흔히 브엘세바에서 단까지라는 표현을 쓴다. 여호사밧 시절에 유다의 경계는 어디서 어디까지인가?

    브엘세바에서 에브라임 산지까지(4): 북 이스라엘을 에브라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 에브라임 산지는 원래 북 이스라엘의 영토다. 유다가 아비야 시절에 빼앗은 땅이다(13:19).

6. 왕이 친히 민정시찰을 다니면서 백성들의 신앙을 살핀다? 참으로 드문 일이다. 그런데 지난 번에 개혁을 했는데도(17:6) 또 하나님께 돌아와야 할 사람들이 있었을까?

    우상은 뽑아도 뽑아도 사라지지 않는 잡초다: 잠시만 방심해도 우상숭배가 득세한다. 아마도 여호사밧이 아합의 집안과 혼인을 하고 동맹을 맺는 것이 우상숭배의 터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4절의 ‘다시’란 말은 1차 개혁을 염두에 둔 표현 같다.

7. 왕이 백성들의 형편을 지속적으로 일일이 살필 수는 없다. 대리인을 잘 세워야 한다. 여기서는 재판관들을 세웠다. 1차 때와 어떻게 다른가?

    1차 개혁 때에는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주력했다(17:7-9): 말씀을 잘 가르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러면 아예 재판관들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가 생겼을 때에 말씀대로 재판한다면(=법이 살아있다면) 튼튼한 울타리가 쳐진 셈이다.

8. 재판관들은 왕의 대리인인가, 하나님의 대리인인가?

    (왕의 대리인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대리인이어야 한다: 왕이 세웠지만 여호와를 위하여 하라고 했으니 결국은 하나님의 대리인이다. 왕을 섬기는 일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되는 이런 관계가 가장 복되다.

9. 재판관들이 불의해서는 안 된다. 치우쳐서도 안 된다. 뇌물을 받아서도 안 된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이다(7). 어떻게 해야 하나?

    삼가 행하여야(=조심해야), 하나님을 두렵게 여겨야: 이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어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이다. 자신의 기분이나 생각대로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 우리 조상들은 코람데오(신전의식) 정신으로 살았다.

10. 10절의 ‘어떤 성읍 형제’와 ‘너희’는 같은 성읍에 사는가?

    다르다: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재판하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지방에서 재판을 했는데 그걸 예루살렘에 있는 재판관에게 가져온 경우를 말한다.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예루살렘의 재판관은 대법원 재판관인 셈이다.

11. 재판관의 임무는 무엇인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지 않게 하는 것(10): 오늘 우리의 관점으로는 재판관의 임무가 정죄하는 것이지만 이스라엘의 재판관은 단순 정죄를 넘어 범죄자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해서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게 해야 한다. 교회의 책벌도 단순하게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돌이키게 하기 위함이다.

12. 우리 법에는 민법, 형법 두 종류가 있다. 이스라엘에는?

    종교법(여호와께 속한 일)과 민법(왕에게 속한 일)이 있는 셈이다. 두 법을 관장하는 우두머리도 구별되어 종교법은 대제사장인 아마랴가 관장하고 민법은 유다 지파의 장로인 스바댜가 관장했다. 아마도 여호사밧 시대부터 이렇게 구분되어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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