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8장


1.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치는 것은 좋으나 이럴 때 일수록 조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2.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하는 대답이 우리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면 어떻게 되나?

3. 여호사밧의 충고에 따라 선지자들을 불렀다. 무엇이 문제인가?

4. 400명의 선지자가 한결같이 대답을 해도 다른 선지자를 찾는 이유가 뭘까?

5. 어떤 점에서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는가?

6. 이렇게 많은 선지자가 활동 하고 있었지만 다 가짜다. 오직 한 사람 미가야는 어떻게 바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었을까?

7. 이스라엘에도 내시가 있었나?

8.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시드기야는 왜 철로 뿔을 만들어 와서 말씀을 전하는가?

9.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자는 얼마나 충성스런 신하인가?

10. 미가야가 좋은 말을 해줘도 말하는 태도를 보면 진심인지 조롱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바른 말을 하라고 다그친다. 바른 말을 하면 기분이 나쁘다. 도대체 뭘 어쩌란 말인가?

11. 목자 없는 양이란 표현(16)은 불쌍한 중에도 불쌍하다는 뜻이다. 미가야의 예언에서는 목자가 없는 것이 오히려 평안하다. 왜 그럴까?

12. 아합 왕이 신(?)이 났다. 자기 말이 맞지 않느냐는 것이다(17). ‘보세요, 내가 그랬잖아요!’ 이럴 때는 자기 말이 맞는 것보다는 틀리는 것이 낫다. 우리 주변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자.

13. 미가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만 한다. 다른 선지자들은 누구의 말을 하는가?

14. 400명의 선지자와 미가야의 말이 다르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자고 하고선 그 뜻에 순종했는가?

15. 시드기야는 자신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한 것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버렸다. 어떻게?

16. 시드기야가 골방에 왜 숨어야 할까?

17. 고난의 떡과 고난의 물이란 먹고 마시는데 힘이 든다는 뜻일까?

18. 이스라엘 왕이 왜 변장하고 들어갈 생각을 했을까? 꾀가 많아서 그랬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기는 한데 그렇다면 여호사밧은 바보란 말인가?

19. 아람 왕이 부하들에게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하고만 싸우라고 한 것은 전쟁에서 당연한 일 아닌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자세하게 쓸 이유가 있을까?

20. 아람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더 이상 추격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감동시킨 탓인가, 그들이 아합이 아닌 것을 알았기 때문(왕상 22:32)인가?

21. 여호사밧이 무엇이라고 소리를 질렀을까? ‘나는 이스라엘 왕(아합)이 아니야!’ 라고 했을까?

22. 여호사밧이 무사히 돌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가, 아람 지휘관들의 지혜 덕분인가?

23. 죽을뻔한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하다. 반면에 이스라엘 왕은 어떻게 죽는가? 무심코? 우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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