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6장 |
36년을 26년으로 수정하는 것이 옳은 모양이다. 2. 라마(예루살렘 북쪽 8km 정도)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 것은 베를린 장벽을 세운 것이나 38선을 막은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이런 일을 처음 시도한 것은 누구며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되고 있던 일을 바아사가 새롭게 강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로보암이 시작했었는데 쿠데타로 집권한 바아사 때에 아사왕의 명성이 높아진 탓에 월남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아사왕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코 앞에 진지를 구축하는 셈이다. 3. 하나님만 의지하며 평생을 지낸 아사왕이 왜 아람왕에게 도움을 청했을까? 일종의 노망 아닐까? 이래서 정년이란 것을 두고 강제로 물러나게 하나보다. 바아사가 하는 짓(3)을 보고 따라한 것 아닐까? 일반적으로 본다면 아사의 생각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으레 그렇게 하는 법이니까. 합리적이긴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이 문제다. 하나님의 전의 보물까지 갖다 바친 것을 보면 그렇다. 자기가 말한 15:13 말씀대로 당하고 싶은 건가? 4. 하나님 대신 외세를 끌어들이면 골치 아픈 일이 뭘까? 그게 한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뒤탈이 날 가능성이 크다: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다시 당나라와 싸워야 했다. 그래서 더 넓은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한반도 일부를 차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5. 벤하닷이 바아사와 조약을 맺고 있었던 모양인데 아사왕의 은금을 받고 돌변하여 공격해올 수가 있나? 벤하닷의 입장에서는 꿩 먹고 알 먹기다. 국가 간에는 인격적인 교제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돌변할 수 있는 것이 국가 간의 의리다. 힘이 없으면 언제든지 버림을 당할 수 있다. 6. 공사를 포기하면서 건축자재를 왜 버리고 갔을까? 다급했기 때문이다. 벤하닷이 이스라엘의 북쪽을 쳤다. 급히 싸우러 가느라고 버려두고 갔다. 7. 라마를 건축하던 재료를 가지고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했으니 제대로 번 셈인가? 밑천이 많이 들어서 별로 남은 장사는 아니다.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내어다 주고 번 부스러기에 불과하다. 게바와 미스바는 라마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유다의 북쪽 경계상의 성읍이다. 8.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이 순종하지 않았더니 다른 자연 만물이 아담에게 순종하지 않게 되었다. 비슷한 현상이 여기에도 있는가? 아사 왕이 하나님의 손을 벗어났더니 아람 왕이 아사 왕의 손에서 벗어났다. 아무리 큰 대적이라도 왕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을 때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는데... 9. 그러니까 이때까지 아사 왕이 전쟁이 없는 태평한 세월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무슨 까닭인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했기(9) 때문이다. 이 마음이 변하는 순간부터 전쟁이 일어난다. 외적이 침입해오는 것이 아사 왕의 변심 탓이다.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현상이다. 10. 선하다고 평가를 받은 왕이 끝까지 선할 수는 없는 걸까? 인간이 그렇게 불완전한 존재다: 이것을 빨리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다. 어느 순간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므로 기준을 잘 잡아두고 흔들리지 않는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님 중심! 코람데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산 이유다. 아사는 선하다는 평가가 무색하게 선지자를 박해한 최초의 왕이 되었다. 11. 병이 났는데 의원을 찾는 게 잘못인가? 하나님을 찾지 않은 것이 잘못이다: 의원이나 약마저 하나님께서 주신 일반 은사(딤전 5:23)라는 것을 알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치신 것을 어디 가서 고치려는가?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매달림으로 15년이나 생명을 연장하지 않았던가(왕하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