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0장


1. 나라의 분열이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 아니란 증거가 있는가?

    온 이스라엘이 르호보암을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모였다(1): 르호보암이 여기서 민심을 잃은 것이 화근이다. 비록 솔로몬의 잘못과 아히야의 예언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솔로몬의 잘못일뿐, 르호보암의 잘못이 경감되지 않는다.

2. 여로보암이 솔로몬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간 이유는 뭘까?

    아히야 선지자의 말을 듣고 조용하게 기다리지 않고 뭔가 일을 저질렀기 때문

3. 사람들이 여로보암을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솔로몬 때에 크든 작든 반기를 든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성을 대신하여 왕에게 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여로보암의 입장에서는 선지자 아히야가 해준 말이 있으니 용기를 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히야가 한 말을 다 기억해야지,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여기는 일부만 기억하다니...

4. 여로보암을 대표로 해서 백성들이 왕에게 한 말은 반역이 아니고 건의 사항이다. 솔로몬 왕이 백성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웠다는 말이 맞는가?

    성전, 왕궁, 그리고 수 많은 국고성과 요새를 지었다. 평화와 부를 누린 왕이었지만 백성들에게는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지혜롭고 유능한 왕의 통치 아래서 백성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리 평화로운 나라라도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세울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땅의 왕인가 보다.

5. 르호보암이 원로들의 권고를 좋아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힘있는 자는 힘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자신을 낮추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원로들의 권고는 섬기는 리더십이다. 자신을 낮춤으로 높아지는 천국의 원리와 닮았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한 자들(삿 2:7)의 권고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것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모양이더라.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묘한 심리는 도대체 웬 일?

6. 솔로몬이 정말 가죽 채찍으로 백성을 쳤을까?

    젊은 신하들의 눈에 그렇게 보인 것이다: 원로들의 충고를 보면 솔로몬의 통치가 백성들에게 다소 부담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도 젊은 신하들은 솔로몬이 백성들을 위해서 노심초사하는 것보다는 겉으로 들어난 모습만 보고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속 마음은 배우지 못하고 겉모습만 보고 배운 탓이라고 할까?

7. 젊은 신하들의 대답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뻥, 과장, 허세: 본 때를 보여주라, 초장부터 군기를 확실하게 잡으라는 말이다. 이런 방식은 잘 잡히면 다행이지만 잘못 건드렸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위험이 있다. 전갈 채찍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가죽보다는 살아있는 전갈이 더 무서우니 이런 표현을 썼을 것이다. 가급적이면 말을 거칠게 해야 먹혀드니까!

8. 하나님의 말씀을 응하게 하려고 한 것이었으니(15) 르호보암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기계처럼 쓰시지 않는다: 이 사건도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보아야 한다. 분열의 조짐은 솔로몬의 통치 후반에 있었지만 후대로 미루어진 것도 르호보암같은 적절한(?) 사람이 등장하기를 기다린 것이다. 르호보암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될 것을 미리 아시고 하신 말씀이라고 할 수도 있고, 르호보암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하나님께서도 다른 선택을 하셨을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라가 이렇게 나뉘게 된 데에 르호보암의 그릇된 선택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9. 온 이스라엘이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고 했다. 정말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은 온 이스라엘과 관계가 있다. 하나님은 다윗의 왕위를 통해서 온 이스라엘에 복을 주신다. 그 의미를 안다면 르호보암이 어리석었다고 해도 함부로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 다윗을 떠난 이스라엘이 오히려 하나님과 더 멀어졌다. 역대기에서는 더 이상 북 이스라엘을 언급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언약을 버린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에서가 야곱의 그늘에 거하고, 함이나 야벳의 후손의 셈의 장막에 거하는 것이 복이다. 목사가 싫어도 하나님을 떠나선 안 된다.

10.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들(17)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유다 지파가 아니면서 유다 지파의 경내에 거하던 다른 지파 사람들: 심정적으로는 자기 지파와 동행하고 싶었겠지만 삶의 근거가 여기에 있으니 할 수 없이 따랐을 것이다. 정치적 소신보다는 삶의 기반 때문이다. 그래도 복이다.

11. 르호보암이 역꾼의 감독을 보낸 것은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한 탓이다. 평소에 이 감독관을 통해서 백성들을 관리했으니 별 생각없이 보냈다가 일이 커진 것이다. 왜 보냈을까? 백성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간 게 아니었나?

    16절의 장막이 자기들의 거주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집회를 위해서 모여있던 임시 장막이었던 모양이다. 르호보암이 아직 세겜에 머물로 있던 것으로 보아 그렇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아직 해산하지 않고 모여있는 그들에게 협상을 위해서 보냈던 모양이다.

12. 건의사항을 들어주지 않아서 왕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반역인가? 아니면 새로운 국가 건설인가?

    배반(19): 비록 왕의 잘못이 있기는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다윗왕조를 버린 것은 하나님을 저버린 것과 다르지 않다. 역대기가 다윗의 왕위를 정통으로 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다윗을 배반한 것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설명해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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