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8장


1. 성전 건축에 7년이 걸렸다. 그러니까 자기 궁궐을 짓는 데에는 13년이 걸렸다는 말이다. 하나님에게 성의가 좀 부족한가?

    아니다: 성전은 그렇게 큰 건물이 아닌데다, 미리 준비를 철저하게 해두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준비기간은 공기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전 기초를 쌓았을 때부터 7년이다. 성전 건축에 관한 기록은 자세한 반면에 자기 궁궐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성의부족이 아니다.

2. 후람이 성읍을 왜 되돌려 주었을까?

    성전 공사의 수고비조로 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왕상 9:11-13)! 후람의 입장에서는 많이 서운했을 것이다. 20년이나 물자와 사람을 대주었는데 쓸모도 없는 땅을 주었다고! 물론 20년 동안 아무런 댓가없이 물자를 제공한 것은 아니다. 두로 왕은 우호적으로 무역을 한 셈이고, 솔로몬은 값을 짜게 매긴 셈이다. 국가 간에는 진정한 우정이란 없다. 힘에 의해서 거래를 하는 법이다. 힘이 있는 쪽에서 섭섭하게 하기 마련이다. 후람(히람)이 참을 수밖에!

3. 평화의 왕 솔로몬은 전쟁을 한 기록이 거의 없다. 유일한 기록이 본문에 나오는 하맛소바를 점령한 것이다. 다윗 왕 때에는 동맹관계였는데(삼상 8:9-10, 말이 좋아 동맹관계지 조공을 바치는 관계) 솔로몬 때에 관계가 깨어진 모양이다. 다드몰과 하맛은 근처에 있는 도성이었을 것이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의 최대로 확장된 국경지역을 가리키는데 어느 쪽 국경일까?

    북쪽 국경: 이스라엘의 최대로 확장된 영토를 가리킬 때 하맛에서부터 애굽 강까지(7:8) 라는 표현을 쓰는 점을 참고하자. 하맛은 유프라테스 강의 한 지류(오론테스 강)가 흐르는 지역을 가리킨다.

4. 물자를 비축하기 위한 국고성을 많이 건축한 것은 공격용이 아니라 수비용이다. 왜 수비용 성읍을 많이 건축했을까?

    대부분의 대적이 점령되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 솔로몬의 일이었다.

5. 깊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성읍이 나뉘어 있어서 윗 벧호론과 아랫 벧호론이라고 불렀다. 유다의 서북부 지역이다. 여기에 견고한 성읍을 건축하는 이유는 어느 민족에 대한 대비책일까? 끈질기게 이스라엘을 괴롭힌 서쪽 해변가에 거주하던 족속은?

    블레셋: 이스라엘을 끈질기게 괴롭힌 민족이다. 왜 완전하게 정복하지 못했을까? 지금도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린다.

6. 솔로몬이 자기의 희망대로 성전과 자기의 궁궐과 수많은 국고성을 건축했다. 백성들은 어떻게 여겼을까?

    좀 무리가 되었던 모양이다. 훗날 나라가 쪼개질 때 이 일로 인해 고통 받았음을 언급한다(10:4). 노예처럼 부린 것이 아니라 관리자로 썼음에도(9) 그렇다.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는 것은 통치가 다소 강압적이었다는 말이다.

7. 바로의 딸은 솔로몬의 아내다. 그러면 왕비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

    선민의식에 따라 왕비라도 이방인이라서: 그래서 왕비이지만 하나님의 궤가 있는 곳에 머무를 수 없다고 한다. 하나님을 존중하던 시절의 솔로몬은 이랬다.

8. 아무리 왕비라고 해도 살 수 없는 곳이 어디인가?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 즉 다윗 성(=다윗의 왕궁): 성전이 건축되기 전에 바로의 딸이 임시로 머무르던 곳이 여호와의 궤가 있던 다윗 성이었다. 좁아서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는 거처를 옮겨야 한다는 뜻이다. 궤는 새로 지은 성전으로, 바로의 딸은 새로 지은 왕궁으로!

9. 솔로몬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모세의 명령도 따르고(13) 다윗의 규례도(14) 따른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에 충실하고 그 율법을 따라 다윗이 만들어둔 제반 규례(시행 세칙인 셈)를 준수한 것이다. 그러니 제사장들도 솔로몬의 명에 따른다. 보기 좋다.

10. 이스라엘의 3대 절기는 무엇인가?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13): 무교절은 유월절, 초실절이라고도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같은 절기가 아니라 붙어있는 절기다. 칠칠절은 오순절, 맥추절이라고도 하고 초막절은 장막절, 수장절이라고도 한다.

11. 성전 공사가 끝난 것은 벌써인데(5:1, 7:11) 왜 여기서 공사가 결점 없이 끝났다고 할까?

    성전 건물은 하드웨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맡은 일을 하는 것은 소프트웨어인 셈이다. 규례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제대로 되는 것을 보고서야 성전 공사 결점 없이 끝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제대로 예배가 드려져야 성전이다.

12. 에돔 땅의 바닷가 에시온게벨과 엘롯은 이스라엘의 국경으로 치면 어디 쯤인가?

    동남쪽 끝: 홍해를 거쳐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13. 후람은 성전을 지을 때 목재를 보내서 돕더니 이제는 배와 바닷길을 아는 종들을 보냈단다. 후람이 어느 나라 왕이지?

    두로: 페니키아의 중심도시로 해상 왕국이다. 배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가졌기에 고문관들을 보내서 해양지식이 없는 이스라엘을 가르쳤다. 아마도 이스라엘이 배로 무역을 해서 융성하기는 이때 뿐이다. 원래 바다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갈릴리를 바다라고 부르는 판이니!

14. 오빌이 어디이기에 금을 이렇게 많이 실어왔을까?

    아카바만과 홍해를 통해서 바다로 나갔으니 가능한 곳은 인도, 아라비아 남부, 아프리카 동부해안 어디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 중에서 금이 많이 나는 곳이 어디지? 여하튼 오빌의 금은 질이 좋았던 모양이다(욥 22:34, 28:16, 시 45:9, 사 13:12). 한번 출항하면 3년이 걸린 것(9:1, 왕상 10:22)과 여호사밧이 선박을 건조하여 오빌로 가려고 했다가 실패한 점을(왕상 22:48) 고려하면 숙련된 사공 없이는 갈 수 없는 먼 곳이었을 것이다.

15. 본문에 나타난 기록을 열왕기와 비교해보면 기록 목적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열왕기에는 솔로몬의 잘못을 그대로 기록(왕상 4:1-19, 7:1-12, 11:1-8, 9-40)하는 반면에 역대기에서는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잘한 부분만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하맛소바와 벧호론을 정복한 내용(3-5)은 열왕기에는 없는 것이다. 바로의 딸에 대한 기록이나 후람이 돌려준 땅의 기록도 세부적으로 보면 차이가 난다. 왜 이렇게 다를까?

    열왕기는 솔로몬의 통치를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는 과정으로 기록했다면 역대기는 다시 회복시킬 수밖에 없는 과정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기에는 솔로몬이나 다윗의 잘못한 사실은 기록하지 않았다. 기록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사료를 달리 취사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사실보다 사관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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