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6장


1. 여호와께서 언제 캄캄한 데 계시겠다고 하셨을까?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는데 솔로몬이 왜 이렇게 말할까?

    직접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백성들에게 나타나신 모습을 보면 그렇게 말씀하신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바디랭귀지로 그렇게 말씀하셨다. 시내산에서 그랬고(출 19:9), 회막에 임재하실 때도 항상 구름 가운데 계셨다(출 40:34). 인생이 범죄하고 난 이후부터 하나님은 숨어계실 수밖에 없다(사 45:15).

2. 캄캄한 데 계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이시지만 이제는 형편이 좀 폈다. 어떻게?

    이제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전에 계시게 되었다: 그렇게 보는 것은 철없는 우리의 시각일뿐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달라진 것이 없다. 이 성전인들 하나님께서 거할만한 장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솔로몬도 안다(18). 정성이라도 받아 주십사 하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3. 솔로몬은 누가 성전을 지었다고 하는가?

    그의 손으로(4): 자신이 아무리 수고를 했다고 해도 도구일뿐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셨다고 말한다. 최선의 수고를 다 하고도 이렇게 수고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을 감사하는 종의 자세를 지닌 것이다.

4. 7년에 걸쳐 엄청난 수고와 정성을 다 해서 성전을 지었는데 왜 하나님께서 지으셨다고 하는가? 그렇게 말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장소를 선택한 이도 하나님, 성전을 지을 마음이 있는 다윗 왕을 선택하신 이도 하나님(6), 성전건축을 허락하신 이도 하나님이시고(삼하 7:14-17), 성전을 건축하는 목적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10, 15) 것이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10, 15) 지어졌다.

5.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집이라도 해도 하나님께 어울리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 계실만한 곳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어디다 쓰려고 이런 집을 지으라고 하셨을까?

    이름이라도 두려고(5, 8):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라는 상징으로 쓰시겠다는 뜻이다. 성전을 지을 때부터 이 점을 분명히 하셨건만 후대에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건물만 소중하게 여기는 어리석은 짓을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6. 5절과 6절은 각각 어느 시대를 가리키는가?

    5절은 사사시대, 6절은 다윗 왕의 시대: 한 곳을 택하여 그 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신 것은 모세에게(신명기에서) 말씀하셨던 일인데 왜 이렇게 오래 동안 이루지 않으셨을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사람이 나타나기까지는 하나님께서도 일하시지 않는다.

7. 다윗은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다(7). 이 말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쓰는 말과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자.

    우리는 능력은 없지만 마음만은 그렇지 않다는 뜻으로 잘 쓴다. 반면에 다윗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 동원해서 준비를 했다(대상 22:2-5, 29:2-9). 마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능력도, 의지도 있었다. 단지 하나님께서 말리셨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들에게 물려주었을 뿐이다.

8. 황금으로 된 집을 완공했다. 그러면 그 다음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을 모셔와야지?

    언약을 넣은 궤를 안치했다: 언약궤가 바로 하나님의 상징이니 하나님을 모셔온 것이나 다름없다.

9. 원래 성막에는 없던 것을 솔로몬이 만든 것이 무엇인가?

    대(13): 이건 단상이다. 제단 앞에 세웠던 모양이다.

10.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언약을 다 이루셨다는 말인가, 덜 이루셨다는 말인가?

    이루어진 부분도 있고(15), 이루어져야 할 부분도 있다(16, 17): 위가 영원하리란 약속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것이니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다.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처럼!

11.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마음은 기쁘게 받으셨다(8). 다윗이 전을 건축하지 못하는 이유는 삼하 7:5-13, 대상 22:8에 있다. 왕상 5:3-4도 참고해서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

    이스라엘이 정착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성전 자체를 거부하신 것이 아님은 정작 성전의 양식까지 소상히 계시하셨기 때문이다(대상 28:11-19). 단순히 피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을 통해서 나라를 안정시켜야 하는 것이 다윗의 역할이었다.

12. 하나님께 ‘...지키시옵소서, ...확실하게 하옵소서’(16, 17) 이래도 되나?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일방적인 처분만 기다리는 처지가 아니라 우리와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는 점만 분명하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 분의 말씀과 그 분의 뜻에 따라 교제를 나누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먼저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안다면(14-15) 이렇게 요청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기도의 가장 큰 특징은 말씀에 근거한 기도이며 그 분이 말씀하신 것을 근거로 하는 기도가 가장 바른 기도다.

13. 하나님은 입으로 하신 말씀을 손으로 이루시는 분이시다(15). 이 말은 상천하지에 홀로 계시는 분께서 모든 일을 자신의 뜻대로 주관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할 일이 전혀 없다는 말인가?

    온 마음으로 행하는 종(14), 자기 길을 삼가 다윗처럼 행하면(16): 다윗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마음을 가진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인간의 작은 헌신과 조화를 이룬다.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인간을 사랑하셔서 인간을 통해서 역사하시려는 하나님의 뜻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동역자가 있을 수 있다(고전 3:9).

14.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18-42)는 너무 길지만(?) 하나님은 무척 기뻐하셨을 것이다. 이 기도가 어떤 점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했을까?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라 해도 하나님의 거하실 곳이 되지 못한다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18, 21)와, 그 분의 말씀에 근거한(20) 기도이기 때문이다: 기도의 내용도 훌륭하지만 그런 기도를 드리는 전제가 더 중요하다. 대단한 성전을 건축하고도 하나님이 여기에 거하실 분이 아니다? 조그만 일을 해놓고도 ‘잘 했죠?’ 하는 인간의 일반적인 심성과 다른 점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유대인들이 보기에 스데반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성전을 모독했기 때문이었다(행 7:47-50). 그러나 성전모독의 원조는 바로 솔로몬이다. 하나님의 크심을 아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화려한 성전도 초라한 오두막과 다를 바가 없다.

15.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는 분이시므로 굳이 특정한 곳에서만 기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솔로몬이 굳이 성전에서 기도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하는가?

    그 곳에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20). 이름을 두겠다는 것은 그 곳에 계시겠다는 말과 동일하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분명히 하늘임을 알고 있으면서도(21) 그 약속에 근거해서 그 분의 눈이 주야로 그 곳을 향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성전이 성전인 것이 성전 때문이 아니라는 인식이 너무나 분명하다. 온 세상 어디라도 계시는 분이 한 곳을 지정하셔서 거기에서 인간을 만나주시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낮아지심이요,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이다. 이 곳이 바로 교회이다.

16. 하나님이 계신 곳은 하늘(21, 23, 25, 30, 33, 35, 39)이라고 고백하면서 왜 성전을 지었는가?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대한 상징일 뿐이라는 것을 솔로몬은 잘 알고 있었다: 성전 자체를 결코 하나님과 동일시하지 않았다. 단지, 하나님께 호소, 회개하기 위한 장소로 여겼을 뿐이다. 또, 하늘은 어디인가? 단순한 공간개념이 아니라 땅을 초월한 개념으로 쓰였을 뿐이다.

17. 솔로몬의 긴 간구 중에 18-21은 총론 격이고, 22-42은 각론인 셈이다. 각론은 몇 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7개: 22-23(맹세에 대하여), 24-25(적국에 패하여 돌이켰을 때), 26-27(가뭄), 28-31(온갖 재앙들), 32-33(이방인들을 위하여), 34-35(전쟁터에서의 기도), 36-42(포로된 곳에서의 기도)

18. 하나님께 맹세하거든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해달라는 것(22-23)은 무슨 의미인가?

    재판을 통해서 죄의 유무를 명확히 가리지 못할 때 하나님께 맡길 터이니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공의대로 심판해 달라(23)는 것이다. 그래야 나라가 제대로 서게 된다. ‘맹세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 힘을 잃어버리면 공의가 제대로 서지 못한다. 양심이 마비된 사회가 된다.

19. 전쟁에서 지는 것은 힘이 없기 때문 아닌가?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전쟁에 지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이다(레 26:17, 신 28:25). 외견상 힘이 없어서, 통치자가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서 그렇지만 내용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불충이 원인이다. 그럴 경우 솔로몬의 회복 방법은 무엇인가?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하거든(24): 성도들도 문제가 있다면 원인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외견상으로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근본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나는 법이다.

20. 지금 솔로몬은 한창 잘 나가는 중이다. 나라도 다른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성한 때에 어떻게 전쟁에 패했을 경우를 말할 수 있는가(24)?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나라의 융성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이런 생각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미리 하신 말씀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레 26:17, 신 28:25).

21. 가뭄의 원인도 이스라엘의 죄 때문인가?

    이스라엘에게는 그렇다(26-27). 그래서 비가 내리는 것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사하시는 것’과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주시는 것’을 먼저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뭄을 만나지 않는 비결이다.

22. 이스라엘이 항상 주를 경외하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셔야 한다고 하는가?

    각 사람의 (마음의) 행위대로 갚으셔야(30): 문맥상 이 말씀은 징계를 요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유하심을 구하는 말씀이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보다는 ‘마음으로 회개하거든 살려주세요!’ 하는 간구이다.

23.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받아주시라고 기도하는 것(32-33)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왜 그런가?

    솔로몬보다 훨씬 후대에도 이런 생각을 갖지 못한 선지자나 유대인들이 대부분이다. 초대교회에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솔로몬이 하나님의 통치영역이 이스라엘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미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단순한 통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온 세상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24. 마지막 두 기도(34-35, 36-42)의 공통된 핵심은 무엇일까?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34, 38): 전쟁으로 말미암거나 포로로 잡혀가서 성전에 올 수 없더라도, 성전이 있는 쪽을 향하여 기도하면 들어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신명기 30:1-4절을 근거로 한 것이다.

25. 성전을 짓고 드리는 기도의 핵심은 범죄한 경우에도 돌이키거든 용서해달라는 것이다. 지금 솔로몬의 형편은 이런 기도를 할만큼 어려운 경우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은 사람의 본질을 보는 눈이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보는 인간관은 어떠한가?

    전적 부패(36): 인간의 전적 부패를 말하는 구절은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를 들 수 있지만 솔로몬도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26. 37절의 ‘범죄하다’의 원어는 af:j::(하타)인데 ‘목표에서 빗나가다’는 뜻이고, ‘패역’은 hw:[:(아바)로 ’어그러지고 구부러짐’을, ‘악을 지음’은 [v'r:(라샤)’는 ‘악하게 행동함’이다. 죄의 어떤 성격을 보여주는가?

    작은 잘못에서 적극적이고 고의적인 잘못으로 깊어진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도 처음부터 그러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실수로 목표에서 벗어나거나, 간다고 가는 것이 어그러지다가 결국은 고의적인 범죄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작은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진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비결이기도 하다.

27. 기도는 여러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 회개, 찬양, 간구, 요청, 중보, 서원, 작정... 솔로몬의 이 기도(14-42)는 어떤 성격의 기도인가?

    중보기도: 왕으로서 백성의 대표자가 되어 하나님께 중재하는 셈이다. 본문에 사용된 ‘기도’는 ‘중재’, ‘간구’는 ‘호의를 간청함(불쌍히 여겨달라)’을 뜻한다. 기도에 대한 응답은 대하 7:1,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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