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5장


1. 전을 다 지었으면 성전기구를 먼저 소개해야지 왜 곳간 얘기가 먼저 나올까?

    곳간에 각종 기물을 들여놓는 것이 성전을 완공하는 셈이다. 성전을 짓는 데에 쓰고 남은 재료나 보조 기구를 들여놓는 것은 주인공이 등장하기 전에 배경을 만드는 셈이다. 남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은 안 된다. 곳간에 잘 보관해두었다가 성전에 쓸 일이 있을 때를 기다려야 한다.

2. 이제 여호와의 언약궤를 완공된 성전의 지성소에 안치시킬 차례이다. 그 전에는 어디에 있었는가?

    다윗 성(시온 성): 솔로몬 시대의 예루살렘은 두 언덕의 정상 부분이 연결된 성읍이었다. 다윗 왕의 시절에는 아래 쪽 언덕 정상에만 성이 있었는데 이 성을 다윗성이라고 불렀다. 솔로몬이 윗 부분의 언덕까지 성을 확장하였고 여기에 성전을 세웠다. 나중에는 이 부분까지 포함해서 시온성이라고 부른다. 언약궤가 다윗 성에 있을 동안 회막은 기브온 산당에 있었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다. 어떻게 보면 핵심이 빠진 회막이었던 셈이다.

3. 겨우 궤 하나를 옮기는데 이스라엘 장로들과 모든 지파의 족장들을 다 소집하는가(2)?

    궤 하나가 아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가는 셈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다 모여야 하는 일이다(3).

4. 장로, 족장들이 다 모였으면 누가 궤를 매야 하는가?

    레위인들(4): 직책의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보직이 중요하다. 레위가 높은 직책이나 신분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일을 맡겼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담당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자.

5. 궤를 옮기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회막이나 장막 안의 거룩한 기구를 왜 옮기나? 솔로몬이 새로 만들지 않았는가?

    새로 만들었다고 이전 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법궤는 다윗성에 옮겨져 있었지만(삼하 6:12-15) 나머지 기구는 기브온의 산당에 있었다(대상 21:29). 성소에 새로 만든 것을 배치했다면 이전의 것은 성전의 다른 방에 따로 보관했을 것이다.

6. 법궤를 지성소에 메어 들이기 전에 무슨 제사를 이렇게 많이 드렸을까?

    다윗이 법궤를 옮길 때 제사를 드린 것처럼 했을 터이고 더구나 지성소에 들이기 전에 온 백성이 화목제를 드리고 함께 하나님 앞에서 거창한 잔치를 벌인 셈이다.

7. 채 끝이 본전(성소)에서 보인다는 말은 지성소가 채의 길이보다 짧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채를 빼서 세워두던지 하지 않고?

    일단 채를 빼는 것은 안된다. 원래 법궤는 채를 끼워서 운반하는 형태이지만 빼지 말라고 하셨다(출 25:15). 아마도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으라는 의미 아닐까?

8. 법궤는 하나님의 상징이었다. 금으로 된 그룹의 날개 아래 모셔진 금으로 된 상자라서? 이 법궤가 하나님의 상징일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금으로 된 상자보다 그 속에 들어있는 돌판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속에서 역사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어야 참된 교회일 것이다. 온통 금으로 치장된 상자 속에 돌판이라? 동시에 언약궤 위 두 그룹 사이(속죄소)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장소이기도 하다(출 25:22).

9. 어느 이단의 강사가 천사는 네 개의 그룹으로 조직되어 있다고 강의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본문의 그룹을 group로 읽었다. 히브리어로 케룹(복수형태는 케루빔)으로 천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천사가 처음 등장한 곳이 어디인가?

    에덴동산: 쫓겨난 아담과 하와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창 3:24).

10. 원래 이 법궤에는 두 돌판 외에 두 가지가 더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돌아보고 계신다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는 언제 사라졌는지 모른다. 체험(만나=양식, 싹난 지팡이=하나님의 인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뜻 아닐까? 만나 항아리(출 16:33-34 여호와 앞, 증거판 앞에)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민 17:10 증거궤 앞에)는 법궤 앞에 보관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아무래도 지팡이는 궤 속에 들어갈 수 없으니... (히 9:4 ↔ 출 25:16, 40:20, 신 10:5).

11. 9절에서 말하는 오늘까지는 언제를 가리키는 말일까? 법궤가 소실된 것은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던 때이다(BC 586). 최소한 그 이전이라는 말인데?

    열왕기 8:8절에서 인용한 것이므로 열왕기가 기록되던 시대(유다가 멸망하기 이전)를 의미한다. 에스라가 역대기를 기록하던 때가 아니다.

12. 제사장들은 반열에 따라 직무를 나누었다. 이 때에는 왜 반열을 무시했을까?

    모든 제사장이 함께 봉사했다는 뜻이다: 성전봉헌 의식이 너무나 방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3.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은 노래하는 레위 사람이다(12). 요즈음 말로 하면 이들의 직책은?

    찬양대 지휘자: 단순한 가수나 찬양대원이 아니다. 다윗이 찬양대를 조직하고 이들에게 책임을 맡겼다(대상 15:19, 25:1-6).

14. 나팔 부는 제사장이 120명이면 노래하는 자는 몇 명이었을까?

    대상 23:5절에 보면 찬양를 위한 레위인의 총수는 4,000명이었다: 아마 거의 다 함께 찬양하지 않았을까? 참고로 전체 찬양대의 조직은 1명의 왕 밑에 3명의 지휘자와 이들을 포함한 24명의 두목, 288명의 교수, 4,000명의 대원이 있었다.

15. 여호와의 전에 웬 구름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단순한 상징 이상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시면 인간이 견딜 수 없기에 연막을 치고 임재하신 것이다(출 40:34-35).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는 함께 대화하며 교제를 나누었다. 이제는 나타나고 싶어도, 손을 잡고 싶어도, 나타날 수도 없고 손을 내밀 수도 없다. 범죄한 이후 변해버린 인간의 모습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름으로 자신의 영광스런 모습을 가린 채 옆에 계시다는 티만 내신다.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은 캄캄한 데에 계신다. 흑암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인간이 그나마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알 수 있다. 인간이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역으로 보면 인간이 얼마나 허약한 존재, 죽음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추락했는지 잘 알 수 있다. 하나님 곁에 가기만 해도 죽을 수밖에 없는...

16. 제사장이 서서 섬기지 못할 정도로 전을 가득 덮은 구름은 예전에도 있었다. 언제? 누구 때?

    모세의 성막 봉헌 때(출 40:34-35): 성막 봉헌 때 여호와의 영광스런 임재를 보여주셨던 분이 솔로몬의 성전 봉헌 때 동일한 모습을 보이셨다. 성막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처소로 인정하셨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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