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1서 4장


1. 여기서(1, 2절) ‘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꿈으로 주어진 계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배운 가르침? 성령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하는 양심의 소리? 초대 교회에는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신 때였음을 참고하자.

    영적인 현상을 동반한 가르침(영감이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의 가르침): 예언이나 방언같은 영적인 현상이 풍성하던 시절에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쳐도 잘 분간하라는 말이다. 그런 시절에는 사단도 그런 수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현대에도 이단들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런 이적적인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병 고치는 은사가 있다고 해서 그의 가르침마저 함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면 위험하다.

2. 꿈을 해석하는 기준이 뭘까? 영험한 기도원 원장이 하는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분별하는 방법은?

    하나님께 속하였나를 시험하라(1): 이게 더 어려운데?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3. 당시에 거짓 선지자들이 무엇이라고 가르쳤을까? 본문을 근거로 생각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육체가 아니다: 영지주의자들 중에서 가현설(Docetism: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기만 했을 뿐이다)을 주장하는 자들이 이렇게 가르쳤다고 한다.

4.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영들을 분간하기가 쉬웠을 것 같다. 하나님의 영임을 알아내는 방법이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느냐의 여부였으니까. 요즈음은 이 방법이 잘 통하지 않는데 왜 그럴까?

    요즈음 이단들은 예수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교묘히 사람들을 미혹하기 때문이다. 가령 자신을 예수의 동생이라고 한다거나 예수가 아닌 또 다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영적인 능력을 과시하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수 백 명이라고 한다.

5. 누군가가 신비한 체험을 말하고, 기적같은 능력을 보여주면 그의 말이 비논리적이고 허황해도 따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근거가 필요한가?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확인해야 한다. 우리의 유일한 근거는 성경이다. 목사님의 말씀이니까 무조건 아멘 하라? 교단 신학교를 나왔으니 믿는다? 스스로 분간할 능력이 부족하면 차선책일 수는 있으나 좋은 태도는 아니니 성경을 근거로 삼을 수 있을 만큼 더 열심히 성경을 배우자.

6. 하나님께 속한 자가 적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를 이길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나님이 적그리스도보다 크기 때문(4): 세상 사람들을 세상적인 지혜로 이기는 것은 제대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싸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대로 이겨야 하나님의 크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기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대리일뿐!

7. 우리가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모두가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받아들이는 사람이 별로 없는 형편이다. 이 좋은 소식을 왜 사람들이 기쁘게 받지 않는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일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전달 방식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우리의 삶이 모범이 되지 못한 탓도 있을 수 있다. 때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여기서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란 충분한 증거가 있음에도 고의적으로 복음을 거부하고 훼방하는 행위를 말한다. 예수를 믿노라 하면서 육체로 오심을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함부로 단정하여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8. 직장에서 우리의 의견보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더 잘 통한다. 우리 얘기에는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왜 이렇다고 하는가?

    저희는 세상에 속하고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4-5): 현대적으로 말한다면 저희는 세속적인 일에 관심이 많고, 우리는 영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셈이다.

9.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간하는 기준이 ‘우리의 말’이네(6). 우리의 말이 구체적으로 뭘까?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 초대 교회 시절 사도들이 한 말을 기록하고 정리한 것이 신약성경이다.

10. 적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웬 사랑타령인가(7-8)?

    적그리스도를 분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극복하거나 그들에게 미혹받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특별히 당부한 것도 바로 사랑이었다. 험한 앞날을 헤쳐 나가는데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었다. 아마 적그리스도를 이기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사랑일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형제사랑 말이다.

11. 하나님의 사랑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인가?

    가장 소중한 것(아들)을 내어 주신 희생이 따른 사랑: 내리 사랑이다(19). 우리가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

12. 장에 소 팔러 간 사람이 병아리 한 상자와 소를 바꾸어 왔다면 사람들이 뭐라 그럴까? 이것보다 더 심각한 현상이 본문 어디에 있는가?

    9절,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 10절, 우리 죄를 위하여 그 아들을!: 하나님의 독생자와 죄인된 피조물을 맞바꾼 셈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없는 사랑이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도무지 계산이 되지 않는, 기가 막히는 일이다.

13.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줄 수도 없다고 합니다. 어려운 가정에서 멸시와 구박을 받으면서 자라난 사람은 결코 남을 사랑할 수 없을까요?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했을지 몰라도 하나님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았다(11)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얼마든지 더 큰 사랑을 하게 된다.

14. 생선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 혹시 나들이 할 일이 있어서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옷을 다 갈아입고 길을 나서도 주변사람들이 알아본단다. 냄새(비린내)가 난단다. 사람이 직업도 숨길 수 없단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직업의식을 드러낸단다. 본문의 어떤 내용을 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사랑을 숨길 수 없다. 의식하지 않아도 드러날 수밖에 없다(11, 12, 19절). 이것이 하나님 사랑의 필연성(당위성)이다.

15. 성경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잘 나타난 절은 몇 절인가?

    9절

16. 하나님을 보는(아는) 방법은?

    형제를 서로 사랑하는 것(7-8, 12): 하나님을 눈으로 보거나 만져보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마치 장님에게 색깔이, 귀머거리에게는 음악이 무의미하듯 하나님과 우리의 감각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컴맹에게 286이든 586이든 무슨 느낌이 있겠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사랑하면 보인다’.

    성경을 주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욥의 고난의 의미도 마찬가지다.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보나이다’라는 고백이 바로 그것이다.

17.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제이다. 화목제란 화해를 위한 제물이다. 그러면 누가 제물을 내야하는가?

    죄지은 당사자가 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비싼 걸로 내놓으셨다.

18. 하나님께서 이런 사랑을 베푸시는 이유는?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담대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결국 이 말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함이다는 말과 같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다(18).

19.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다’(17)는 말씀은 ‘우리도 세상에서 주님과 같다’는 말이다. 무엇이 같다는 말일까? 바로 앞 구절과 관련지어 생각해보자.

    주님이 세상을 이긴 것처럼 우리도 세상을 이길 것이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주님이 온갖 고난을 다 이기고 담대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 것처럼 우리도 그러할 것이다.

20.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증거는 무엇일까?

    두려움이 없는 것(18): 하나님도 두렵지 않고, 당연히 그 분의 심판도 두렵지 않다. 그러면 세상에 무엇이 두렵겠는가!

21.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 형제가 내게 유익이 되거나 장래에 어떤 유익을 바라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옆에 있는 형제는 어떤 형제인가? 내 밥? 내 호구?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버리기까지 사랑하신 형제:

2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은 그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음을 우리가 어떻게 알고 믿을 수 있다고 하는가?

    성령을 통해서(13): 우리의 지식과 노력으로 이해하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믿음도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일뿐이다.

23.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정하는 교훈을 반박하는 것(2)이 본문 전체의 흐름이다. ‘그들이 너희의 말을 듣지 않아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다(9). 예수를 부인하다면 하나님의 이 큰 사랑도 부인하는 셈이다.’ 이 외에 또 어떤 표현으로 이 교훈을 반박하고 있는가?

    우리가 친히 ‘보았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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