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24


1. 전장에서는 레위인, 즉 제사장을 돕는 사람들을 24반열로 나누었다. 그러면 제사장들은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

    동일하게 24반열로 나누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가령, 제1반열 제사장이 임무를 수행할 때는 제1반열 레위인들이 봉사하는 식이다.

2. 나답과 아비후는 광야시절에 죽었다(레 10:1-3). 다시 말하면 오래 전에 죽은 조상인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급해야 하나?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방식대로 해야 한다는 교훈을 은연중에 되새기는 셈이다. 하나님은 제 멋대로 대해도 괜찮은 분이 아니시다(레 10:3). 사랑이 넘치는 분이시지만 동시에 공의로운 분이시다.

3. 다윗의 시대에는 제사장(실제로는 대제사장)이 두 명 있었다. 사울의 왕가를 흡수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셈이다. 누구인가?

    사울과 아비아달(혹은 아히멜렉): 아히멜렉은 아비아달의 아버지로 다윗이 쫓기던 시절에 도와준 일로 사울에게 죽임을 당했다(삼상 22장). 그런데 왜 여기에도 아히멜렉이라고 나오는 걸까? 아마도 아비아달의 아들이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또 아히멜렉 아니었을까(삼하 8:17, 대상 18:16)? 아비아달이 나이 많아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할 때 그의 아들 아히멜렉이 대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비아달은 말년에 아도니야의 반란에 가담했다가 제사장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4. 레위인을 24반열로 나눌 때는 가문을 따라서 나눴다. 제사장이 경우에는 조금 다른가?

    가문 외에 자손의 수를 고려했다: 자손이 많으면 반열을 더 많이 배정했다는 말이다. 엘르아살의 자손이 배나 많았다.

5. 두 가문에서 24명의 우두머리를 세웠는데 제비는 왜 뽑았을까?

    순번을 뽑은 것(7-18): 순번이야 뭐 그리 중요할까? 다만, 차등이 없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애를 썼다는 점이 중요하다.

6. 여기 나온 24반열의 명단 중에서 알만한 사람이 있는가? 세례요한의 아버지가 제사장이었는데?

    아비야 반열: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바로 이 반열의 제사장이었다(눅 1:5).

    조금 달라지기는 포로기 이후에 조금 달라진 채 나타나기는 순서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7. 아므람의 아들은 대단히 유명한 사람인데 누구더라?

    아론과 모세: 그러면 수바엘이 모세의 동생인가? 실제로는 아므람의 증손이다(23:16의 스부엘, 모세의 장자 게르솜의 아들)

8. 20-25는 그핫 족속의 아홉반열을 다시(23:12-20의 반복) 소개하고, 26-31은 므라리 족속의 5반열을 다시(23:21-24) 소개하는 중이다. 아휴, 머리 아파!!! 므라리 족속의 경우에 두 군데를 비교해서 차이점을 찾아보자.

    여기에는 야아시야가 추가되어 있음: 아마 야아시야는 므라리의 아들이 아니라 후손이었을 것이다. 훗날 큰 가문으로 성장하게 되어 반열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24반열이 끝까지 유지된 것이 아니라 바뀌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했다.

9. 제사장을 24반열, 레위인들도 24반열로 조직한 것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함이다. 성전이 하드웨어라면 제사장과 레위의 24반열은 소프트웨어인 셈이다. 교회에도 이런 조직이 필요한가?

    교회가 해야 할 많은 일을 많은 봉사자들이 조화롭게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주의할 점은 조직이 목표가 되지 않아야 한다. 일을 잘 하기 위해서 조직을 만들었는데 나중에 보면 조직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10. 장자는 엄청난 복을 물려받았는데 왜 여기서는 차이가 없을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장자나 막내나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높고 낮음도 귀천도 없다. 한 형제요 자매일 뿐이다.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