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21 |
다윗이 잠시 하나님을 잊고 엉뚱한 욕심에 사로잡힌 탓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온 다윗이 그 결과에 취하여 하나님 대신 자신의 병력에 눈을 돌렸기 때문에 사탄이 틈을 탄 것이다. 다윗이 사탄에게 틈을 준 것이다. 먹고 살만하게 되자 통장의 잔고를 세며 흐뭇해 하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그럴수록 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제발 까불지 말자. 2. 백성을 계수하는 것이 잘못인가? 심지어 요압이 말리는 것(3)을 보면 그런 것 같은데? 원래 합법적인 인구조사는 제사장이 하고 속전을 내도록 되어 있다(민 1:3, 26:1-2, 출 30:2).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얼마나 많아졌는가를 알아 보아야 한다. 다윗은 자기 군사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었고, 제사장 대신 군대장관을 동원하여 인구를 조사하였다. 전쟁터에서 실전을 계속하는 장군이 오히려 군사의 숫자에 무심한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만 전투의 현장에서는 결코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이 승리를 가져다 준 것을 요압도 알았다. 그래서 왕을 말리는 것을 보면 요압도 대단한 충신인데 나중에 보면 좀 다르단 말이야! 현명한 다윗이 여기서는 신하의 충언을 듣지 않는다! 3.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이란 지금 말로 하면 국방장관이나 군의 총책임자다. 이런 분들이 자리를 비우고 지방을 돌아다니며 한가로이 인구조사를 할 수 있을까? (삼하 24:8을 보면 거의 열 달이 걸려 인구조사가 완료되었다.) 모든 전투가 다 끝나고 평온한 시기이었다는 뜻이다: 평안하고 여유로울 때가 되면 그 동안의 업적을 뒤돌아 보게 된다. 이 때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감사가 나오겠지만 자신이 고개를 들면 사탄이 설치게 된다. 자기가 잘 나서 나라가 이렇게 평온해진 것이 아님을 잘 알텐데... 잘 먹고 잘 살 때 특히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우리나라 전국을 가리킬 때는 흔히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라는 표현을 쓴다. 이스라엘은?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브엘세바는 남쪽 경계, 단은 북쪽 경계다. 5. 군사의 수가 157만 명이란다. 출애굽 때와 사울 왕 때와 비교하면 어떤가? 출애굽 때와 비교하면 거의 3배, 사울 왕 때에 비하면 5-6배의 규모다. 자랑스러웠겠지만 백성이 얼마나 될까 싶은 교만한 마음이 결국은 백성의 숫자를 줄여놓고 만 것이다. 6. 요압이 왜 레위 지파와 베냐민 사람들은 계수하지 않았을까? 기분이 나빠서? 레위지파를 계수하지 않은 것은 전례를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베냐민 지파는 아마도 사보타지 중(6) 아닐까? 그렇다면 여기 숫자도 그리 정확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삼하 24장에 따르면 요압은 먼 곳에서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면 최후의 조사대상이 베냐민 지파가 된다. 이 경내에 예루살렘과 기브온 산당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일을 끝내지 않고 미적대고 있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것 아닐까(대상 27:24)? 7. 다윗의 시대에 유명한 선지자는 나단이었다. 다윗이 밧세바와 범죄했을 때는 나단이 잘못을 지적하더니 백성을 계수하는 잘못을 저지르자 갓이 등장한다. 선견자 갓이 다윗에게 나타나 중요한 말씀을 전한 적이 이외에 또 있을까?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에 단 한번 선지자가 찾아온 적이 있다. 그 때 갓이 찾아와서 모압을 떠나 유다로 가라고 했다(삼상 22:5). 쫓길 때 쫓기더라도 유다에서 쫓기라는 기묘한(?) 주문이었다. 그래서 나단이나 갓이 사무엘서의 저자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8. 선지지가 제시한 선택 과목은 셋이다.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다윗의 기준은 무엇인가? 매를 맞아도 하나님께 맞겠다는 것(13): 범사에 하나님을 잊지 않는 다윗다운 태도다. 어느 재앙이든지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은 틀림없지만 중요한 것은 재앙을 받아들이는 그의 마음이다. 잠시 흔들렸던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즉시 제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설령, 실수를 했다고 해도 재빨리 인정하고 정신을 차려야 더 큰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참고로 3년 기근이 사무엘서에는 7년 기근으로 나와 있는데(삼하 24:13) 문맥상으로 보면 여기 기록이 정확한 것으로 여겨진다. 9. 죄인에게 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 않다. 어떤 때에 이런 일이 생길까? 벌을 주기는 싫지만 주지 않을 수 없어서 그럴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어쩔 수 없이 매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맞는 자식보다 때리는 부모가 더 아프다. 이걸 아는 자식이 별로 없다. 10. 다윗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이 7만 명이었다는데(14) 이것은 어마어마한 재앙이다. 이들은 다윗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것 아닌가?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려고 한 것은 다윗이 아니라 이스라엘이었다(1절). 이유가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니 추측을 할 수밖에 없다. 쉽게 짐작이 가는 이스라엘 전체의 범죄행위는 압살롬의 난과 세바의 난에 동조한 죄일 것이다. 다윗의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백성들이 다윗을 배신하고 압살롬을 추종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명백한 범죄행위다. 11. 이왕 맞을 매라면 하나님에게 직접 매를 맞겠다는 다윗의 선택이(13) 제대로 맞아떨어진 셈이다. 하나님께서 뉘우쳤으니 말이다. 하나님은 왜 하필이면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서 이렇게 마음을 돌리셨을까? 이 곳이 과거에 어떤 장소이었는지 훗날 어떤 장소가 되는지 알아야 하는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린 곳, 성전이 세워지는 곳,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신 곳: 범죄한 자기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의 고난이 눈에 보이는 곳이다. 우리가 구원을 얻고 의롭게 된 것도 우리의 모습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서 피묻은 자신의 아들을 보신 것이다. 애굽에서 죽음의 천사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을 넘어간 것도 문에 바른 피를 보셨기 때문이다. 참고로 오르난은 히브리식 발음이고 삼하 24:16의 아라우나는 여부스식 발음이란다. 12. 예루살렘을 멸하려는 천사가 하필이면 여부스 사람의 땅에 섰을까? 여부스 사람과 예루살렘은 무슨 관계인가? 예루살렘이 원래 여부스 사람들의 본거지였다: 그러니까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예루살렘의 외곽에(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평평하고 약간 높은 곳이다. 그러니까 이 곳에서 천사가 예루살렘을 내려다 보면 멸망시키려는 자세를 잡고 서 있었다는 말이다. 훗날 이곳이 예루살렘과 연결되어 예루살렘이 확장되고 여기에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다. 13. 예루살렘을 멸하려는 천사를 보고 다윗이 ‘죽을 놈은 바로 접니다, 백성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한가, 칭찬받을 일인가? 당연한 일이지만 이게 그렇게 쉽지 않은 모양이더라: 눈 앞에 천사가 나타나도 ‘죽을 놈은 저 놈입니다’ 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당연한 고백임에도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하나님께서 먼저 뉘우치셨는데(15) 엉뚱한 소리를 해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14. 재앙 내리는 일을 중지하시면 되지 제사는 왜 드리라고 할까? 제사를 통해서 다시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이다. 범죄한 인생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제사였다. 하나님께서 다시 다윗을 받아주시겠다는 응답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늘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15. 천사를 본 오르난은 얼마나 놀랐을까? 죽을 수도 있는데? 그래서 숨어있는데 왕이 신하들과 함께 왔다. 그러더니 땅을 팔란다! 어떡하지? 당장 드려야지: 어떻게 값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그냥 쓰세요’ 할 수밖에 없다. 오르난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왕이 이유를 설명하기도 전에 드릴 판이다! 16. 땅은 물론, 소나 곡식떠는 도구까지 전부 그냥 드리겠다는데도 다윗은 값을 다 지불하려고 한다. 자원해서 드린다는 데 꼭 값을 계산해야 하나? 정당한 값을 지불하는 것이 옳다: 더구나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반드시 값을 지불해야겠다는 것이다. 자신을 드리는 것이니 지극히 당연하다. 어떤 분이 목사는 참 나쁜 놈이란다. 성도들이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참 좋네요’ 하고 ‘가져 가세요’ 하면 고맙게 가져간단다. 그래놓고 뒤에서 욕을 한다. 목사뿐만 아니라 윗사람이 공짜를 좋아하면 안된다. 주는 것을 아무 생각없이 넙죽넙죽 받아도 안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거절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진심을 무시하는 경우가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17. 금 육백 세겔은 은으로 치면 9000세겔이다(15배). 은 한 세겔은 노동자의 4일 품삯이다. 그러면 100년 연봉인데 너무 비싼 것 아닌가? 너무 너무 큰 금액이다. 그래서 단순하게 타작마당만 계산한 것이 아니라 훗날 성전터로 삼으려고 산 전체를 산 값으로 본다: 삼하 24:24에는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산 것으로 되어있다. 처음에는 타작 마당만 샀다가 후일에 산 전체를 사서 예루살렘과 연결시킬 때에 들어간 비용을 이렇게 기록한 모양이다. 사무엘에서는 이 사건을 다윗이 용서받는 이야기에 초점을 두었고 역대기에서는 성전부지를 마련한 것에 초점을 둔 탓이다(21-27장의 내용은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다). 다윗의 실수마저 성전부지를 마련하는 도구로 쓰셨다. 18. 다윗이 천사의 칼을 무서워하여 하지 못한 일이 무엇인가? 기브온 산당에 가서 제사 드리는 일: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칼집을 도로 꽂은 천사를 무서워하여 여기에서 계속 제사를 드렸다는 말이다. 그 천사가 다시 칼을 빼어들까 싶어서 기브온 산당으로 가지 못하고 여기에 성막을 새로 짓고 제사를 드리다가 솔로몬 때에 성전을 짓게된 것이다. 가장 두려운 형벌의 장이 가장 은혜로운 성전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