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5


1. 사무엘하(삼하 6:12-15)와 비교해보자. 여기에 있는 어떤 내용이 그 곳에는 없는가?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역할이 자세하지 않다: 오벧에돔의 집에서 궤를 옮긴 이유도 그 집에 내려진 복을 받으려고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신앙을 강조하는 셈이다.

2. 다윗 왕이 하나님의 집을 의미하는 장막을 새로 세웠단다(1). 광야에서 모세의 인도로 만든 이 성막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어디에 있었기에 새로 만들었을까? (최소한 두 군데)

    실로, 놉, 기브온: 성막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실로에 설치되었다가 엘리 제사장의 말기에 실로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후에 놉에 있었던 것 같은데(삼상 21장, 법궤는 블레셋에 빼앗겼다가 기럇여아림에 있고), 사울이 놉을 멸하고 난 후에 어떻게 기브온에 설치되어 있었는지는(대하 1:3) 알 수 없다. 어쨌거나 현재로서는 기브온에 장막이 세워져 있었는데 다윗이 그것을 본떠서 세웠음이 틀림없다.

3. 법궤가 무엇이기에 다윗이 이렇게 심혈을 기울이는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 법궤는 조각목(아카시아 나무)에 금으로 입혀서 만든 것이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속에 있는 돌판(십계명)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쓰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금 상자, 법궤가 없는 성전, 말씀이 없는 교회... 다 소용없는 것이다. 법궤가 없는 예루살렘이라면 나라의 중심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려고 이렇게 수고를 했을 것이다.

4. 웃사의 일을 겪은 다음에야 알게 된 사실은 무엇인가?

    언약궤는 레위 지파 중에서도 고핫(=그핫) 자손만이 메고 운반해야 한다는 것(민 4:15, 7:9): 미리 잘 좀 알아보고 했더라면 웃사의 불행은 없었을 것 아닐까? 가까운 제사장들 중에서 이 사실을 미리 안 사람은 없었을까? 이런 사람을 옆에 두는 것도 복이다.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방식이다.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도 그랬다! 열심보다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수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역사에서 교훈을 받지 못하는 백성은 망할 수밖에 없다던가! 아무나 궤를 멜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직분을 허락한 대로 해야 할 뿐이다. 능력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5. 5절의 우리엘 뿐만 아니라 8-10절의 엘리사반(웃시엘의 아들), 헤브론, 웃시엘도 그핫 자손이다(출 6:18-22). 온통 그핫 자손들 판이네?

    법궤를 옮기는 일은 그핫 자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막은 조립식 건물이다. 이동을 위해서 해체하면 3부분으로, 즉 벽과 휘장과 기구들로 나뉜다. 레위의 세 아들 게르손(=게르솜)은 휘장, 그핫(=고핫)은 기구, 므라리는 벽체를 운반하는 임무를 각각 맡았다(민 3장)

6. 다윗 시대에 대제사장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엘리에게 후손이 없을 것이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엘리의 후손이다. 누굴까?

    아비아달: 그래서 대제사장의 계보(6:1-15)에 아비아달은 나오지 않는다. 다윗이 어려움을 겪던 시절에 도움을 주었던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의 아들이지만 솔로몬의 왕위 계승과 관련하여 아도니야의 반역을 지지한 일(왕상 1장)로 제사장직을 박탈 당하게 된다. 엘리에게 내린 저주가 이 때에 다 이루어졌다. 그렇다고 아비아달이 대제사장직을 빼앗긴 것을 엘리 탓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의 그릇된 판단 탓이다.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인간의 선택이 별 개의 것이면서도 사실은 하나다. 예술이다! 둘이면서 하나!

7. ‘전에’ 란 언제이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는가(13)?

    웃사가 죽던 때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웃사에게 충돌하셨지만 그것이 사실은 ‘우리를’ 충돌하신 것으로 알았다. 비록 웃사가 죽었지만 자신의 잘못이요, 자신이 죽어야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대단한 깨달음이다. 그래서 다윗이 위대한 것이다.

8. 여호와의 궤는 반드시 고핫 자손이 메고 운반해야했다. 어떻게 메었을까?

    채로 꿰어 어깨에 멨다(15): 그래서 성막의 성물은 모퉁이에 채를 꿰는 고리가 달려 있었다. 만들 때부터 전혀 손을 대지 않아도 운반이 가능하도록 만들라고 하셨다.

9.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는 데에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필요한가?

    궤를 멘 레위 사람(11-12), 노래하는 자(두목 그나냐)와 악기 연주자(16-21), 문지기, 그리고 제사장들이다(앞에서 나팔과 ‘각’을 부는 사람, 28, 24, 수 6:4).

10.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는데 문지기는 왜 필요할까(18, 23, 24)?

    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이었을 것이다(23절 참고). 문지기이면서 연주도 했다.

11. 노래하는 자와 연주자를 지휘하는 사람이 셋이다(17, 19, 가운데: 헤만 6:33, 우: 아삽 6:39, 좌: 에단 6:44)). 그러나 오늘날의 오케스트라나 고적대처럼 지휘봉으로 지휘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으로 지휘를 하는 셈인가?

    제금(심벌즈, 혹은 징): 이걸 크게 울려서 박자를 맞춘 셈이다. 우리나라의 상쇠가 꽹과리를 치거나 드럼이 박자를 잡아주는 것과 비슷하겠다.

12. 다윗이 그 옛날에 이런 악기를 동원해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왜 훗날 교회당에서 악기를 쓸 수 있느냐 없느냐, 혹은 어떤 악기는 되느니 안 되느니 문제가 되었을까?

    글세 말이다, 똥고집 때문 아닐까? 무악기파와 악기파로 갈라진 적도 있었단다. 우리나라에서는 교회당에서 기타를 쓸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마도 기타가 술집이나 유행가의 반주로 널리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드럼도 예배당에 그리 쉽게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다윗은 율법에도 없는 성가대를 조직해서 찬양을 하지 않았는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는 마음이 있다면 악기나 방법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13. 여창에 맞추는 자란 여자의 소리, 즉 소프라노로 노래했다는 말이다(=시 46편의 알라못). 그러면 여덟째 음에 맞추어 하는 노래는 무엇을 의미할까?

    남자의 소리겠지(시편 6편의 스미닛): 그러니까 2성부 합창이고, 비파는 높은 음을 내고 수금은 저음을 내는 악기다. 제금은 박자를 맞추는 타악기이고.

14. 지휘자가 있고 노래하는 연주자가 있는 데 왜 족장이 노래를 가르치나(22)? 해석상의 문제가 있단다. ‘노래’로 번역된 말의 본 뜻은 ‘들어올림’이다. 드물게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부르는 경우에도 쓰이지만 대부분 무거운 짐을 들어올리거나 메는 의미로 쓰였다. 만약 그나냐가 노래를 가르치는 일을 한 것이 아니라면 무슨 일을 했다는 의미일까(27절에 ‘노래하는 자’가 중복이 된 점도 참고로 하자)?

    ‘언약궤를 옮기는 일의 책임자’로 보는 것이 타당! 그 당시에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웃사가 이걸 몰라서 비극을 당했다.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온 지 거의 80년이 되도록 메고 운반한 적이 없었으니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대상 26:29에 그나냐와 그 아들들은 예배보다는 ‘바깥 일을 맡았다’고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5. 레위 사람들이 법궤를 옮기는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도와 주셨을까(26)?

    웃사처럼 죽지 않고 무사히 운반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운반하는 일보다 그것을 받아주시는 일이 훨씬 큰 도움이시다. 받아주시지 않으면 모든 일이 허사인 걸! 우리는 우리의 헌신의 크기를 재는 버릇이 있다. 헌신하는 것을 기뻐해주시는 그 분의 은혜가 더 큰 것인 줄 모른 채!

16. 에봇은 제사장의 겉옷인데 왜 다윗이 입었을까?

    여기 에봇은 제사장의 복장이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간단한 의복으로, 소년 사무엘이 실로의 성소에서 이것을 착용했다(삼상 2:18). 봉사하는 사람의 복장이다. 왕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입었다. 하나님 앞에 왕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서고 싶기 때문이다. 왕이 이렇게 큰 행사에서 평상복을 입은 것이나 체신머리 없이 춤을 추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7.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데에 동원된 악기는 전부 몇 종류인가?

    5가지: 각과 나팔은 제사장이 부는 것이며, 제금과 비파와 수금은 찬양대가 쓰는 것이다.

18. 이렇게 좋은 날에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은 왜 그럴까?

    기준(가치관)이 다르면 그럴 수 있다. 하나님을 인생의 최고 가치로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는 기쁨이 가장 큰 기쁨이지만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에게는 하찮은 일이다. 몸은 교회에, 마음은 세상에! 최고의 불행이다!

19. 미갈은 다윗의 아내인가 사울의 딸인가?

    이제는 당연히 다윗의 아내이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사울의 딸이라니! 이제는 사울의 딸로 사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아내로 살아야 한다. 그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아야 한다. 시집만 오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가치관이 일치해야 한다.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라면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언약궤의 중요성을 모른 탓도 있었을 것이다, 자기 아버지도 그랬으니!

20.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오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거하실 곳을 정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신 12:5, 17:8). 언제 어떻게 그 장소를 정하셨는가?

    하나님을 진실되게 섬기는 자를 통해서: 그 말씀을 하신지(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온지) 거의 400년 만에 다윗을 통해서 그 뜻을 이루셨다. 여부스인들은 여부스인들대로, 다윗은 다윗대로 이 성읍의 중요성을 알고 차지했다. 그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오래 전에 모리아 땅의 한 산을 염두에 두셨다(창 22:2). 하나님은 진실되게 하나님을 섬기는 자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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