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2


1.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삼을 것이라고 했지만 오랜 세월 사울에게 쫓기다가 겨우 시글락에(1년 4개월) 피해 있었다. 사울을 피하여 도망 다니던 시절을 더듬어 보면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란(1) 어떤 때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고난의 마무리 단계다: 곧 끝이 난다. 더구나 용사들이 찾아온다. 힘들고 어려운 때를 견디어 냈더니 진짜 용사들(사람들)을 보내주시고 바로 이 전투에서 사울이 죽는다. 그리고 다윗은 유다지방의 왕이 되어 돌아온다(삼하 2:1-4). 힘들고 어려워도 조금 더 참아야 한다.

2. 헤브론에서 다윗이 왕으로 세워진 시점에서 보면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란 과거의 일이다. 어려운 때에 그를 찾아와서 도운 자들이다. 찾아온 용사들을 몇 종류로 나눌 수 있는가?

    4 종류: 베냐민 지파, 갓 지파, 베냐민과 유다 지파, 므낫세 지파.

3. 베냐민 지파 사람이, 그것도 사울의 동족이 사울을 버리고 다윗에게 오는 것이 왜 쉽지 않을까?

    동족에게 배신자로 찍힐 수도 있고, 기득권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윗을 찾아온 것은 하나님의 뜻이 다윗에게 있음을 진작에 알고 있었는 데다 사울의 실정이 계속되자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쉽지 않은 결단이다. 사울에게는 몰락의 전조요, 다윗에게는 소망의 메시지다. 사울은 있는 용사도 내어쫓고, 도망가게 하고, 다윗은 사람을 받아들였다. 누가 번성할 것인지는 명약관화다.

4. 원래 베냐민 지파가 싸움에 능하다. 여기에 나오는 용사들의 모습을 요즈음 모습으로 바꾸면 어떨까?

    쌍권총을 든(=좌우 손을 놀려) 무적의 전사와 비슷할까? 온갖 신무기(=물매도, 살도)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용사인 셈이다.

5. 아무리 다윗의 시대라고 해도 그렇지 전임 왕을 무엇이라고?

    기스의 아들 사울: 버림받은 왕이긴 하지만 이렇게 부르는 것은 좀 그렇다. 우리 느낌만 그런지도 모른다. 아마새가 다윗을 보고 이새의 아들이라고 부른 걸 보면 이게 그렇게 섭섭한 표현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

    다윗이 사울을 이렇게 무시하거나 낮춘 적이 없었으니 역대기 기자가 그러는 모양이다.

6. 베냐민 지파 중에서 투항해온 용사들의 우두머리는 아히에셀이고(3) 나중에 삼십인의 두목이 되기는 이스마야다(4). 그런데 그 후에는 둘 다 별다른 기록이 없다. 아마 다른 더 뛰어난 용사들에게 자리를 내주었을 것이다. 이 무리들 중에서 훗날 누가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는가?

    야소브암(6): 첫 삼인의 대장격이었다(11:11). 시글락으로 찾아올 때는 무리 중의 한 사람, 혹을 말단이었으나 훗날 큰 인물이 된 것이다.

7. ‘거친 땅 견고한 곳’(8)은 ‘광야의 요새’라는 뜻이다. 어디일까?

    특정한 지역이 아니라 다윗이 찾아 다니던 광야의 은신처를 가리킨다: 일정한 곳이 아니라 사울을 피해 떠돌아 다닐 때 찾아오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돌아온 자’라는 말에 주의해야 한다. 이들이 다윗을 떠났다가 다시 온 사람들이 아니다. 사울에게서 도망쳐서 온 자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비교적 초기에 다윗을 따랐던 셈이다. 시글락으로 찾아온 사람들은 거의 방랑 말기에 온 것이다.

8. 갓 사람들이 다윗을 찾아오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위치와 자연환경을 비교해보라.

    갓 지파의 거주지는 요단 동편으로 넓은 목초지가 펼쳐진 곳이다. 목초지를 버리고 황량한 사막 가운데로 온 것이다. 도중에 요단 강을 건너야 하고(15) 사울의 군대를 피해야 한다. 웬만한 열심과 소신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이라는 확신이 들면 드넓은 목초지를 떠나 광야라도 가야 한다. 결국은 이 광야가 영광스런 곳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9.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 있을 때는 따르는 무리들이 기껏해야 400, 혹은 600명이었다. 갓 자손들이 언제 100, 혹은1000명을 관할했을까(14)?

    이 기록이 후대의 내용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들이 사울의 부대에 있었을 때의 지위를 말하는 것이거나 또는 일당백, 혹은 일당천의 용사(=14절의 군대장관)이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10. 갓 사람들이 사자같다는 것은 용맹하다는 뜻이다. 얼마나 용맹한가?

    강물이 언덕에 넘칠 때 두려워하지 않고 강을 건너 싸웠다(15): 사울의 군대를 물리치고 다윗에게 나아오려고 그랬는지 후대에 다른 민족과 싸운 얘기인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그야말로 엄청나게 용맹스러운 짓이다. 한니발이 코끼리를 몰고 알프스산맥을 넘어서 로마로 쳐들어왔다.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짓이었다. 갓 사람들도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간 크기는 닮았다. 참고로 이스라엘은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에 비가 온다. 하필 이럴 때 강을 건너다니!

11. 그 옛날에도 위장귀순이 없었을 리가 없다. 맹세 하나로 믿을 수 있었을까?

    위장인지 아닌지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지도자에게는 필수적인 요소다: 이런 판단력이 흐려지면 사울이 되는 것이고 제대로 판단하면 다윗이 되는 것이다. 돕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진짜 믿음이 좋은 성도인지 혹시 이단이나 사기치러 오는 사람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가짜를 구별해낼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의 말씀에 예민한데서 오는 것 아닐까?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겉으로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척하는 사람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맹세 하나로 신뢰할 수 있던 시절이 그립다. 하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기를 치는 세상이 돼서!

12. 다윗이 사울을 치려한 적이 있었던가?

    시늉만 낸 적이 있다(삼상 28:1-2): 아기스는 다윗을 신임했지만 다른 방백들이 반대함으로 참전하지 못했다(19). 돌아오면서 속으로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사울과 싸울 의사는 아예 없었다.

13. 므낫세 지파 사람들이 특별히 다윗에게 위로가 된 점은 무엇일까(20)?

    시글락에 남겨둔 처자가 다 아말렉에게 포로로 잡혀갔을 때(삼상 30:1) 도우러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20절의 ‘시글락으로 갈 때’): 이들이 엄청나게 낙심한 다윗을 도와 도적떼를 쳤으니 특별히 더 고마웠을 것이다. 돌에 맞아 죽을 뻔한 때에 므낫세의 용사들이 다윗을 도왔다. 하필이면 이 때에?

14.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돕겠다고 찾아오는 바람에 다윗의 군대는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단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 그것도 여러 지파에서! 정말 은혜다. 문제는 왜 시글락에 있을 때인가? 블레셋이 사울을 치려할 때 인가? 사울이 전투에서 죽기 바로 직전이다.

    사울에게 쫓기기 시작한 때부터 시글락에서 용사들이 찾아온 때까지 기간이 결코 짧지 않다. 긴긴 수련의 기간이 끝나면 그 동안의 수고가 빛을 발한다.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시험의 기간을 지난 다음 사람을 보내주신다.

15. 다윗을 찾아온 사람들이 다 용사요 군대장관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군대 같았단다(22). 삼상 22:2에 의하면 이들은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라고 하는 데 왜 이렇게 표현이 다르지?

    일반적으로 보면(과거지향적인 눈으로 보면) 실패자들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미래지향적인 눈으로) 보면 용사다. 지난 과거보다는 하나님께서 이들을 어떻게 들어쓰실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이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다윗의 방랑 말기에 해당하고 삼상 22장의 표현은 좀 더 이른 시기의 대한 묘사일 수는 있으나 상당한 부분이 겹치고 있으므로 이런 설명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16. 광야의 견고한 곳으로 찾아온 사람도 있고(8) 시글락으로 찾아온 용사도 있고(1), 시글락으로 갈 때에(20) 찾아온 용사도 있다. 헤브론을 찾아온 사람은 뭐야?

    왕의 즉위식을 위해서 모인 사람들: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어 7년 반을 지낸 후에 찾아온 사람들이다. 광야의 견고한 곳으로 찾아온 사람들이 가장 존중되어야 할 사람들이다.

17. 원래 모든 지파의 선봉에 선 지파는 유다였는데 유다지파의 수가 다른 지파(30-37)에 비해서 턱없이 적다. 왜 그럴까?

    유다 지파(시므온 지파도 포함)는 이미 다윗을 따르고 있었으니 별도로 즉위식을 위해서 군대를 파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일을 주관하고 있으니(39절의 ‘형제’)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18. 지파별로 보아서 제일 적은 인원이 참가한 지파는?

    베냐민 지파(29): 여전히 사울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 탓이다. 28절의 사독과 장관은 레위 지파에 속한다. 잇사갈 지파는 두목만 200명이니 그들이 관할하는 군사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윗의 즉위식에 빠진 지파가 없다는 것은 이상적인 이스라엘이 세워졌다는 뜻이다.

19.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군사들이 모여 뭘 하는가?

    일종의 열병식: 항오를(=伍와 列을) 정제히 했다(38)는 것은 국군의 날과 같은 행사에 퍼레이드를 하거나 군인들이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위력을 과시하는 행사를 진행했다는 뜻이다. 즉위식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였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먹고 마시는 것이겠지만.

20. 즉위식을 치르고 먹고 마시니 기뻤다는 것일까(40)?

    아니다, 희락이 있었으니 먹고 마시면서 즐긴 것이다(원문에는 그 의미가 더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영광스러운 나라를 세우셨다는 희락이 있었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지 먹고 마시는 잔치 때문에 즐거운 것이 아니다. 모든 백성들이 다윗의 즉위식을 진정으로 기뻐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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