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9 |
왕조는 사라졌지만 기록은 있었을 것이고, 거기에 추가로 기록했다는 말이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그만큼 중요하게 여겨졌다는 말이다. 새로운 신정국가를 세운 주역이다. 2. 2절이 의미하는 바가 분명치 않다. 원문 자체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한글 번역을 타박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땅 안에 있는 성읍’은 어느 성읍이며 ‘처음으로 거주한’ 것은 언제를 가리키는지 그 아래 내용을 참고해서 생각해보자. 3절을 보면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에 처음 거주한 사람이라면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거나 아니면 포로에서 돌아와서 거하게 된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데 문맥에 따른다면 포로에서 돌아와서 맨 처음 예루살렘에 거주한 사람들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3.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이 둘로 나뉘어져서 이스라엘과 유다가 되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두 나라의 개념은 사라졌다. 이제 이들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이스라엘, 혹은 유다: 1절의 ‘온 이스라엘’은 나라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12지파를 뜻하는 민족적인 의미다. 북 이스라엘이 먼저 망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많은 에브라임, 므낫세 지파 사람들(3)뿐만 아니라, 다른 지파 사람들도 유다로 도망해 오거나 앗수르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 되돌아 왔거나 함께 사로잡혀 가기도 하고 바벨론에서 서로 만나 사귀기도 하면서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계기를 함께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그 땅에서부터 올라와’ (호 1:11) 다시 한 나라를 이루게 되리라(겔 37:22)는 것이 예언되었었다. 결국 남 유다도 망하고 포로로 갔지만 귀환하여 명맥을 이어갔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이 유대인이라고 불리게 된다. 4. 유다가 사로잡혀간 것은 국가의 힘이 쇠퇴한 탓 아닌가? 겉보기에는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유다가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징계하셨기 때문이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요인들마저도 하나의 증상일뿐 원인이 아니다. 탁월한 학자나 문화비평가들이 보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하나님이시다.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근본 원인은 하나님이시다. 5. 포로로 갔다가 옛 성읍에 제일 먼저 돌아온 대표적인 사람들이 왜 제사장, 레위 사람들, 느디님 사람들일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다해도 제일 먼저, 아니 그래도 끝까지 여호와 신앙을 지킨 자들이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소중한 그들에게는 살기 편한 바벨론이 진정한 위로를 주지 못하는 곳이었다. 힘들고 어려운 난관이 첩첩히 쌓인 곳이지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제일 먼저 돌아왔을 것이다. 6. 느디님 사람들은 성전의 막일꾼을 가리킨다. 원래는 가나안 족속이었지만 살려주는 대신 성전의 물 긷는자, 나무 패는 자가 된 사람들이다(수 9:27). 포로로 잡혀가는 와중에 신분을 세탁해서 다른 직종으로 옮겨가면 되지 않았을까? 굳이 그 신분을 유지해서 돌아올 필요가 있었을까? 일의 경중이나 신분의 고하를 따진다면 돌아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이런 것을 따지지 않게 했을 것이다. 출신성분과 일의 경중에 상관없이 자신의 일을 소중하게 여긴 진정한 신앙인이었다는 말이다. 7. 느헤미야도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기록한 적이 있다(느 11:3-34). 역대기 기자가 이스라엘 전 지파의 족보를 기록한 후에 예루살렘에 거주한 사람들을 따로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떻게 보면 새역사의 주인공이다: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제대로 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는 주역들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지역이기에 가장 위험한 지역에서 가장 고생을 많이 했던 자들이었다. 원래 파괴된 도시를 새로 재건하는 것보다는 다른 곳에 새로 세우는 것이 쉽다. 그런데 이들은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위해서 엄청난 고생을 자초한 것이다. 레위지파 외에는 주로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들이다(4-9). 8. 유다, 베냐민, 제사장 중에서 누가 제일 많은가? 제사장(1760, 유다지파 = 690, 베냐민 지파 = 965): 참 특이하다. 출애굽 때부터 가장 강성한 핵심 지파가 유다였는데 레위 지파 중에서 제사장 가족이 제일 많다니! 아무리 예루살렘이 제사 드리는 유일한 장소였다고 해도 이건 정말 많은 숫자다. 그만큼 이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품었다는 증거다. 9. 당시의 대제사장은 여호수아다(슥 3:1). 그러면 본문의 ‘하나님의 성전을 맡은 자’란 무슨 의미일까? 성전의 실무를 맡은 사람 아닐까? 대제사장의 최측근으로 가장 바쁘게 중요한 일을 감당했을 것이다.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이 시를 쓴 사람은 누구, 혹은 누구의 자손일지 본문을 근거로 생각해보자. 고라 자손(19, 시 84:10): 시 42, 44-49, 84, 85, 87, 88편에 고라 자손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있다. 고라는 모세의 종형으로 르우벤 자손 다단과 아비람과 그리고 온이 작당하여 족장 250명과 더불어 모세와 아론에게 반역했다. 모세 형제가 분수에 지나치게 굴며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인다고 그랬다. 그러나 그 결과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 채로 땅에 삼킨 바 되어 음부에 떨어졌다(민 16장). 아버지의 반역행위를 지지하지 않은 고라의 아들들이 살아서(민 26:10) 이렇게 귀한 직분을 감당하게 되었다. 11. 문지기의 직무를 맡은 사람들은 공채에 합격한 탓인가? 조상들의 직무를 물려받았다(18, 19): 광야에서 생활할 때 레위지파는 성막을 빙둘러 주변에 진을 쳤다. 그 레위 자손의 진영의 문지기였던 조상들의 직무를 성전을 건축한 후에도 후손들이 물려 받았다. 왕의 문(18) 이란 왕이 성전에 출입하는 문이며 동쪽에 있었다. 레위 자손의 진영의 출입문도 성막의 출입문이 있는 동쪽이었다. 고라는 그핫(고핫)의 자손으로 본래 임무는 지성물을 운반 또는 관리하는 것이었다(민 4:4-15). 12. 비느하스에게는 특별한 수식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 이란 말이 있다(20). 무슨 일을 했길래 그럴까?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 하나님의 분노를 대신 풀어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민 25:6-13). 그가 아버지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 문지기들을 거느렸다는 말일 것이다. 13. 광야에서 레위인들에게 적절하게 임무를 맡긴 것은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서 오랜 세월동안 레위인들은 할 일이 없었다. 새롭게 이들에게 직분을 나누어 준 사람은 누구일까? 다윗과 사무엘: 사사시대 말엽에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 스스로 돌아온 궤을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7, 80년 정도 보관해두었다가 왕궁으로 모셔온 것은 다윗이다. 이 다윗이 사무엘이 기초한 제도를 기반으로 레위지파들에게 직분을 주고 제대로 활동하게 한 장본인이다. 14. ‘...다윗과 선견자 사무엘이 전에 세워서 이 직분을 맡긴 자라’(22). 이 문장에서 ‘전에 세워서’ 가 무슨 뜻일까? 신뢰하여: 개역성경이 오역을 한 탓이다. 그럼에도 한글 성경에서는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前인지, 殿인지도 알기 어렵다. 개역한자에는 前으로 되어있다. 그러니까 ‘다윗의 시대에’ 세웠다는 의미인데 문맥으로도 그렇지만 명백한 오역이다. The gatekeepers had been assigned ‘to their positions of trust' by David and Samuel the seer[NIV]. 15. 군에서 장교는 외부에서 살고 졸병은 내부에서 거주하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24시간 근무를 한다. 말단 직원은 현장을 지키고 사장은 외부 일을 핑계로 현장을 멀리 한다면 미래가 뻔하다. 반면에 성전 문지기들의 근무형태는 어떠한가? 우두머리들은 성전 가까운 곳에 거처하면서 직무를 수행했고 다른 문지기들은 마을에 거하면서 차례가 되면 성전으로 와서 근무를 했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현상과 반대로 되어있다. 우두머리가 더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하나님께 가까울수록 더 경외하는 마음과 책임과 열성을 지녀야 한다(레 10:3). 16. 문지기라고 문만 지키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또 무슨 일을 했는가? 성소에 필요한 소제물, 관유, 떡도 만들었다: 29, 31절은 소제와 관련된 내용이고, 30절은 성소의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는 관유(출 30:23-25)를 만드는 일이다. 떡상의 떡도 만들었다. 17. 문지기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온통 문지기 얘기 뿐인가? 제사장들이나 찬송하는 자들에게 비하면 비전문적인 일이지만 이들의 헌신을 귀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26). 직업에도 귀천이 없다던데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성전이 회복된다면 무슨 일인들 기쁘지 않으며 무슨 일인들 귀하지 않을까? 김구 선생님이 그랬단다, ‘독립이 된다면 정부의 문지기라도 기꺼이 하겠다’고. 18. 35-44절은 어디서 본 듯 한데? 8:29-39의 중복이다: 뒤이어지는 사울 왕의 이야기로 넘어가려고 덧붙인 모양이다. 그러니까 9장은 이스라엘의 12지파(실제로는 9지파)를 언급한 2-8장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이제야 본론으로 넘어가려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