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8 |
나라가 둘로 나뉠 때 베냐민지파만 남쪽 유다(다윗 왕가)에 합류했다(왕상 12:21, 23).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가 이스라엘의 핵심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바벨론 포로 귀환 후에도 마찬가지였다(느 11:4, 7, 31, 36). 줄을 잘 서야 한다. 하나님 편에 줄을 서야 하는 법이다. 2. 여기 베냐민의 족보는 계보를 따른 족보가 아니라 특정한 족장들을 중심으로 기록한 탓에 연결이 잘 안된다. 쉽지 않지만 세 단락으로 나누어보자. 1-5: 베냐민과 벨라의 자손, 6-28: 에훗의 자손, 29-40: 사울의 자손 3. 베냐민 지파에서 아주 중요하게 언급되는 인물은 에훗이다(6-28). 어디서 본 듯한 이름인데? 모압 왕 에글론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의 이름이 에훗이다(삿 3:15). 동일인 같아 보인다. 잘 났건 못 났건 그 후손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4. 6절은 ‘그들이 그들을 사로잡아갔다’라는 말이다. 에훗의 후손 족장들이 마니핫으로 사로잡혀 갔는지, 다른 사람들을 사로잡아 갔는지는 의미가 분명치 않다. 주어와 목적어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은 탓이다. 그냥 넘어가자. 사하라임이 내보낸 아내와 새로 얻은 아내의 후손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가? 내보낸 아내 후심에게서 낳은 아이들은 아비둡(나의 아버지는 선하시다), 엘바알(하나님은 역사하신다)이며 영웅적인 인물이 되었다. 반면에 모압 땅에서 새로 얻은 아내가 낳은 아이들 중에는 메사(모압왕과 같은 이름), 말감(모압의 우상 이름)이 보인다. 특별한 업적에 대한 기록도 없다. 어머니의 영향력이 잘 드러나 있다. 사하라임이 어떤 연유에서 이스라엘 혈통의 아내를 내버리고 모압 여인에게 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떤 여인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5. 브리아(13)라는 이름이 어디에서 나왔더라? 가드 원주민에게 죽임을 당한 에브라임의 후손 대신에 낳은 아들이다(7:23). 베냐민 지파의 브리아도 자기 이름에 얽힌 에브라임의 조상들의 원한을 기억하고 원수 갚는 일에 한 몫을 했던 모양이다. 6. 에훗의 후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했다(6-28). 다윗이 여부스 사람들을 완전하게 점령하기까지는 예루살렘이 유대인들의 땅이 아니었다. 그러면 예루살렘 근처에 거주했다는 말이 된다. 이 말이 훗날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손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줄까? 조상들이 거주했던 곳에 후손들도 거주해야 한다. 예루살렘이 수도나 왕도가 아니라 바벨론에서 귀환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로 마음을 먹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느 11:2). 7. 기브온에 거주한 자들은 여이엘의 후손이다. 여이엘은 왜 유명한가? 사울왕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여이엘은 사울 왕가의 중시조인 셈이다. 사울도 기브아 사람이다(삼상 10:26) 8. 사울의 아들들은 전부 전쟁에서 죽거나(삼상 31:6), 자객에게 죽었다(삼하 4:6). 그럼에도 번성한 것은 누구 덕분인가? 요나단과 그의 아들 므립바알(34, 삼상 20:15, 23, 42, 삼하9:7): 므립바알은 므비보셋을 가리킨다. 요나단이 다윗을 도우며 후손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바알이란 주인을 뜻하는 말로 히브리인들도 즐겨쓰던 말인데 이게 나중에 우상을 가리키는 말이 되자 유대인들이 사용하기를 꺼리는 바람에 므립바알이 므비보셋으로 바뀌게 된다. 9. ‘큰 용사’로 전장터에서 활을 잘 쏘는 자가 무려 한 세대에 150명이나 있었다(40)는 것은 후손이 아주 번창했다는 의미다. 이렇게 번성한 후손을 도대체 누구의 후손이라고 할까? 양발 절름발이 므비보셋(므립바알): 몰락한 왕가의 후손으로 발도 제대로 쓰지 못하던 그를 다윗이 후대하여 준 결과 나라를 위해 일할 능력이 극대화된 셈이다. 물론 그의 아버지 요나단도, 그와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갚은 다윗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